브루고뉴, 피노누아 (Pinot Noir)

2025. 1. 26. 20:42카테고리 없음

 

 

피노누아 (Pinot Noir)

와인의 끝판왕이라 불릴 만큼 잘 알려진 품종이지만, 워낙 그 세계가 방대한 탓에 공부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의 예상과는 달리, 손님들 중에서 의외로 피노누아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유가 뭐지? 아마도 그래서 빨리 공부하고 싶어졌다.

기존의 나는 피노누아에 대하여 정말 간단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 '타닌이 적고, 가벼운 바디감을 가진 레드 와인 품종'

자고로 레드 와인이라면 어느정도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고, 타닌도 좀 느껴져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던 나는, 피노누아를 굳이 호불호의 선상에 놓고 선택하자면 불호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쪽이었다. (와린이의 입장으로써 직관적이지 않은 품종은 아직 어려워서 겁을 먹고 그냥 좀 이유 없이 싫어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그치만 피노누아에 대해 조금은 공부하고 나니 감히 내가 이유 없이 싫다고 하기에는 꽤나 몸값이 높은 품종임을 알게 되었다.

피노누아는 생산하기 까다로운 품종이다. 포도 자체가 얇은 껍질을 가지고 있고, 포도알이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어 병충해와 냉해에도 약하다. 뿐만 아니라, 피노누아는 다양한 클론 (clone)이 존재한다. 클론은 같은 품종이라도 수확량, 맛과 향 등이 조금씩 다른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품종 자체의 DNA가 조금 불안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맛과 향을 가진 포도를 생산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서늘한 기후대에서 가장 잘 자란다고 하지만 무척 예민한 구석이 있다. 너무 서늘하면 양배추 잎 같은 좋지 않은 풍미가 나고, 너무 따뜻하면 피노누아 품종 특유의 섬세한 아로마가 사라지고 잼(Jam) 같은 맛과 향이 강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아무데서나 쉽게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은 아닌 것이다.

포도 재배 뿐만 아니라 와인 양조도 까다롭다는 특징이 있다. 타닌도 적은 편이고 라이트하기 때문에 오크 숙성을 잘못 시키면 과실의 풍미가 오크 풍미에 압도 될 수도 있고. 원래 와인을 만들 때 포도의 줄기 등을 떼어내고 발효를 시키는데 피노누아의 경우 타닌의 질감이라던지 무게감 등을 조절하기 위해 줄기 등을 떼지 않고 다같이 한 번에 발효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양조법에 따라 스타일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굉장히 재배하기 까다롭고, 섬세하고 여린 포도 품종이다.

이렇다보니 피노누아는 대부분 고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의 품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와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말이 있는데, "저가 피노누아는 안 마시는만 못하다" 이다. 흔히 마트 와인코너에서 볼 수 있는 1~2만원 혹은 3~4 만원대 정도의 저가 피노누아로 입문해 보려 했다가는 괜히 실망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돈 없는 와인 초보자는 어떤 피노누아로 입문해야 하는지 선택이 쉽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대륙에서도 꽤 나쁘지 않은 피노누아를 만든다고도 한다.) 실제로 나는 클라우디베이 피노누아를 테이스팅 해봤는데, 역시 부르고뉴에는 못 미치지만 이정도면 평타는 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피노누아는 브루고뉴

프랑스 브루고뉴 피노누아에 대해서는 가성비를 논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요즘 다른 곳에서 피노누아를 잘 만든다고 하지만, 브루고뉴를 대체할 수 있는 산지의 피노누아는 단호하게 없다고 말 할 정도이다. 왜 브루고뉴 지역의 피노누아가 최고인가? 가장 기본으로는 브루고뉴는 피노누아가 자라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고, 땅에 대한 모든 성분도 완벽하고, 와인을 만들고 있는 생산자들도 세계 최고이다. 나아가면, 포도 밭의 '구획' 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지가 수백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구획은 한 발자국만 건너가도 와인의 가격차이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데, 그당시 수도승들이 흙을 파서 맛을 볼 정도로 세밀하게 구분을 했다고 한다. 전 세계 유통하는 와인들의 가격 기준으로 보았을 때 1위부터 50위 까지 중의 약 70%가 브루고뉴 피노누아라고 하니, 분명 이유가 있는 명성일 것이다.

와인 초보자는 그냥 먹지 말라는 말이 있어서, 아마도 내가 중수쯤에 도달하면 꽤나 값비싼 브루고뉴의 피노누아를 내 돈 주고 사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